|
|
by 밤양갱 카테고리
이전블로그
햇빛이 시끄럽다.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는, 피식 웃으며 고통스럽게 척추를 일으켰다. 아무래도 과음의 여파가 꽤 강한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그저께 술 다시 한 번만 그렇게 먹으면 개의 자식이라고 한 것 같은데, 그럼 난 지금 개인가? 그렇게 자조하며, 크리스토퍼 카일 리-W대의 젊은 부교수는, 아침을 맞이하였다. 올해로 34세, 슬슬 눈가에 주름도 보이고 배에 군살도 보이기 마련이니만은, 천성의 단순함으로 그 모습에서 나이는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아침! 케이티, 내꿈 꿨어?" 검은 암코양이는 크리스를 못볼 것을 봤다는 듯이 노려보다가 홱 달려가 사료 통 앞에서 야옹거린다. 으음, 고양이에게도 무시당하는 교수라. 이것 참 난감한데. 크리스는 부스스한 금발을 벅벅 긁으면서 애묘에게 밥을 주기 위해 찬장을 뒤졌다. "어이쿠야, 다 떨어졌네" 생각해보니 어제 아침에 사료가 다 떨어져서 저녁에 사와야지, 라며 포스트 잇을 붙여놓았던 공책이 생각났다. 그 후 럼주와 위스키와 마티니에 흥청망청 취한 것 이외에 기억은 없다. 할 수 없군. 오늘 아침은 삶은 닭고기 샐러드다. 물론 그중 가장 좋은 곳은 케이티에게 가겠지만. 이곳 동부에 크리스가 오게 된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강의도 그리 엉망은 아니었고-크리스가 생각하기에는-학생들과도 그럭저럭 양호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리 허전하지?" 혼잣말을 내뱉고서는 머쓱해졌다. 혼자 살고 나서부터는, 부쩍 혼잣말이 늘어난 것 같다. 외로움을 흐리게 할 목적으로 얻어온 케이티는 물론 귀엽지만, 그 깜찍한 검은 털뭉치는 대답대신 울부짖음만을 돌려주곤 했다. 물론 크리스 자신이 혼자 살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에 의해 이렇게 쓸데없이 큰 맨션에 혼자 사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교수로 발령났다는 말과 같이 가주겠냐는 말을 하는 순간, "싫어, 거기엔 바다가 없잖아? 그리고 난 조금 더 이 도시에 있고 싶어. 여기 남자들은 섹시하거든" 딱 잘라 말하는 그녀 앞에 뭐라고 반론도 못한 채 발령일은 닥쳐왔다. 그리고 그녀는 아주 화창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편지지와 봉투 한묶음을 주었다. "매일 안 쓰면 죽어" 내 팔자도 참 기구하지, 확 바람이나 피워 볼까?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크리스는 퍼뜩 닭고기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내린 아래에는 퉁퉁 불어 볼품없어진 물빠진 단백질 조각이 냄비안을 떠다니고 있었다.
"리 교수님 등이 너무 넓어서 칠판이 안보입니다!" "자네에겐 내가 다음 강의에 내 자리에 앉는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지. 그 이외의 질문이 없다면,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학생들은 낄낄 거리며 교과서를 덮었다. 크리스가 이 대학에 와서 처음 맡게 된 과목은 미생물학 개론이었다. 원래 그의 전공은 균류의 연구에 가까웠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청바지에 셔츠라는 간소한 차림은 교수라기보다 조교에 가까워 보였지만, 이 학교에서는 그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되려, "여어 카일군, 수업 끝났나?" "안녕하십니까 훅교수님, 방금 끝났습니다" 저기서 인사하는 노교수의 멜빵바지가 신경쓰인다면 모를까. "이제 슬슬 기말이군, 기말이 끝나면 방학일세. 왠지 난 이때만 되면 기분이 참 좋아지더군" "하하,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시나요?" "내 시험문제를 받은 학생들의 절망적인 표정이야말로 나의 기운의 원천이거든" 로버트 훅 교수는 심술궂은 표정으로 낄낄 웃었다. 크리스는 대충 맞장구 쳐주면서 아침에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내가 욕구불만 때문에 이런건가? 애인이 보고 싶긴 하지만.. 그렇다고 1000킬로미터가 더 넘는 서부로 달려가기에는 난 너무 성숙해졌는 걸. "..라는데 카일군, 자네는 어느거로 할텐가?" "예? 뭘 말입니까?" 노교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점심메뉴 말일세, 오늘은 새우랑 송아지 고기가 나온다는 말을 하고 있었어. 뭘 그리 열심히 생각하는가?" "아, 저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전 물론 송아지 고기를 택하겠습니다, 훅교수님은 어느걸로 하시겠습니까?" "난 새우로 하겠네, 의사가 콜레스테롤치를 걱정하고 있지만 상관없어, 새우를 먹지 못할바에야 그까짓 수명 줄이는게 낫거든.." 다시 즐거운 표정으로 훅교수는 덧붙였다. 인텔리는 상위로 갈 수록 괴짜가 많다지. 어딘가서 주워들은 말을 되삼기며 크리스는 피식 웃었다. 뭐, 나도 평범하진 않지만. 눈 속의 나노마신을 일반적인 것으로 바꿔달라고 의뢰한 지가 벌써 5년 전이다. 처음 얘기를 꺼냈을 때 김박사는 정말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후계자는 있는가?" "없지만, 제 삶을 찾을 권리는 있지요" 능청맞은 표정으로 유들유들하게 말했지만, 나름대로 큰 결정이었다. 빌런과의 싸움, 도시의 수호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수도 없었다. 목표가 있는 이상은. "다시 공부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아마 제가 없어도, 괜찮을 겁니다. 지금의 히어로에는 저보다 훨씬 뛰어난 후진들이 많은 걸요" "끄응.... 고려해보도록 하지. 지금 확답을 주기는 힘들군" 마지막까지 김박사는 그리 내키지 않아하는 낌새였다. 별로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처음에 들어올 때부터 그런 약속이었으니까. 대학원 시절의 스승이었던 교수는 다시 돌아가는 것을 흔쾌히 승낙해주셨고, 그는 다시 대학원에서 연구과정을 밟아갔다. 그리고 박사과정 졸업 후, 우연히 발견한 미생물 현상에 대한 논문의 공로를 인정받아, 34세의 젊은 나이로 부교수 직에 오르게 되었다. 보통의 교수코스로의 진입으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의 입장에는 매우 감사하고 있었고, 삶에도 그리 불만은 없는 편이었다.
이글루링크
최근 등록된 덧글
오오시발
열폭에 열폭을 ..
by 강초장 at 10/16 그러니까 도전할 가치가 있.. by 밤양갱 at 11/02 근데 그러기 어려워서 캐안습 by 테슬라 at 10/26 ...OMG by 테슬라 at 02/28 skin by 이글루스 |
|